지도에는 같은 길로 보이지만 오래 걸어본 사람에게 골목은 저마다 다른 시간의 이름을 가집니다.
월하 편집부·읽는 시간 약 8분
몇 해 만에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를 찾았습니다. 지하철역에서 내려 오 분쯤 걸으면 나오던 골목이었습니다. 기억 속의 그 길은 어른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에도 넉넉할 만큼 넓었고,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습니다. 그런데 막상 서 보니 골목은 놀랄 만큼 좁고 짧았습니다. 담벼락은 제 어깨보다 조금 높았을 뿐이고, 끝 모퉁이까지는 서른 걸음도 되지 않았습니다. 길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제가 자랐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차렸습니다.
지도 앱에 같은 골목을 입력해 보았습니다. 화면에는 가느다란 회색 선 하나와 건물 번호, 그리고 ‘○○길 12’라는 건조한 이름이 떠 있었습니다. 저는 그 이름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. 정확하고 올바른 이름이었지만 제 기억 속의 골목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. 오래 걸어 본 사람에게 골목은 저마다 다른 시간의 이름을 가집니다. 그날 저는 제 골목에 어떤 이름이 있었는지를 하나씩 헤아려 보았습니다.
비 오는 날의 모퉁이
첫 번째 이름은 ‘비 오는 날의 모퉁이’였습니다. 골목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는 자리인데, 비가 오면 그곳에 늘 커다란 물웅덩이가 고였습니다.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산을 쓰고도 그 웅덩이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. 어린 저는 일부러 한가운데를 첨벙첨벙 밟고 지나가곤 했습니다. 신발이 젖어 집에 들어서면 어머니가 현관에서 수건을 들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. 혼내는 얼굴이면서도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던 것 같습니다.
지금 같은 자리에 서 보니 웅덩이는 없었습니다. 포장이 새로 되어 물이 잘 빠지도록 경사가 바뀌어 있었습니다. 하지만 비 냄새는 어쩐지 그대로였습니다. 젖은 시멘트 담장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을 때, 저는 열 살로…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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