비가 멈추면 세상은 바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. 난간에는 물방울이 남고 아스팔트는 어두운 색을 조금 더 오래 품습니다. 하수구로 흘러드는 물소리는 한참 뒤에도 이어지고, 공기는 평소보다 한결 무겁고 맑습니다. 비가 오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친 뒤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냅니다. 이 글은 그 시간, 비가 그친 뒤의 짧은 한때를 바라본 다섯 편의 시와 그에 대한 해설입니다.
문장도 비슷합니다. 한 번 마음을 적신 말은 책을 덮은 뒤에도 곧장 사라지지 않습니다. 읽을 때는 대수롭지 않았던 한 줄이 며칠 뒤 문득 떠올라 하루의 풍경을 다르게 만들기도 합니다. 그래서 이 연작은 비가 그친 뒤의 풍경과 문장이 남기는 여운을 나란히 놓고 읽어 보려는 시도입니다.
연작 〈비가 그친 뒤의 문장〉
하나. 난간
비가 그치자 난간 끝마다 물방울이 맺혀 있다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것들이 하나씩 하늘을 담고 있다
둘. 젖은 길
마른 길은 금세 잊히는데 젖은 길은 오래 기억된다 발자국이 남기 때문이다 지나간 사람의 속도까지
셋. 우산을 접으며
우산을 접자 접힌 자리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비를 막아 준 것들은 비를 가장 오래 가지고 있다
넷. 책을 덮은 뒤
책을 덮었는데 문장 하나가 손등에 남아 있다 좋은 문장은 읽는 순간보다 떠난 뒤의 시간을 더 오래 바꾼다
다섯. 마르는 동안
젖은 골목이 마르는 동안 같은 풍경도 잠시 다른 이름을 갖는다 나는 그 이름을 부르지 않고 오래 서서 지켜본다
해설 하나.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것
첫 번째 시는 비가 그친 직후의 난간을 클로즈업합니다. 물방울이 난간 끝에 맺혀 있습니다. 중력이 당기는데도 표면 장력이 붙잡아서 아직 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. 시는 이 물방울이 하늘을 담고 있다고 말합니다. 작은 물방울 안에 비친 하늘은 아주 작지만 하나의 완전한 하늘입니다.
이 장면은 우리의 마음에도 있습니다.…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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